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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중국의 자기(磁器)(1)-상주(商周), 삼국(三國)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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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Expo 등록일 2005-10-17

(1) 청자의 탄생
 중국의 자기 발명시기에 관해서 현재 학술계에서는 아직 논란이 많지만 최근에는 새로운 자료에 의해 자기가 상주(商周) 시기에 최초로 만들어진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상주시기의 자기는 완전한 청자로 볼 수는 없지만 그 기본 태료(台料)성분이 비슷하여‘원시청자’로 불린다.
 원시청자는 자토(磁土) 즉, 고령토(高嶺土)를 원료로 하는데 그 화학성분은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 시기의 청자, 송대(宋代)의 저명한 영청자기(影靑磁器) 및 명대(明代)의 경덕진(景德鎭)의 선덕청화자기(善德靑華磁器)의 태료(胎料) 성분과 기본적으로 일치하며, 기술력이 부족하여 세밀한 정제가 이루어지지 않아 다소 거친 느낌을 준다. 원시청자의 소성온도는 900~1500℃에 달하며, 소재가 소결되면서 치밀하고 단단한 구조가 되어 흡수성이 거의 없고, 완성품은 소실(燒失)되는 현상이 적고 경도는 7도(度)에 이른다. 보통의 점토는 이상의 특성이 없어서 자기를 만들 수가 없다.
 상대(上代)에 노예제도가 확립되어 사회의 경제·과학·기술이 모두 뚜렷하게 발전하였다. 또한 농업도 상당히 발전하여 곡류의 생산이 증가함에 따라 사람들의 삶도 나아져 점차 사람들이 술을 좋아하며 주기(酒器)의 수요도 따라서 증가하였다. 그러나 청동기를 주기로 하기에는 수량이 제한되어 있었고, 자기는 단가가 싸고 제작도 비교적 쉬우므로 많은 수요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었다. 금속의 제련업이 발달하였기 때문에 상대(商代)에는 성공적으로 고온의 문제를 해결하였다. 고온은 자기를 소성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조건의 하나이며, 이 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자기의 소성은 불가능하였다. 
 수공업의 발달은 상업의 발전을 자극하였다. 상업의 발달은 역으로 각지의 수공업자들의 생산을 확대시켰고 신흥 수공업자들의 출현을 촉진시켰으며, 자토의 발견은 수천 년 동안의 도기제작 경험이 축적된 것과 함께 사람들이 새로운 원료를 써서 유약을 바르는 기법을 모색하도록 만들어서 도자기제조가 발전하게 되었다.
 원시청자는 출현한 후에 도기가 갖추지 못한 장점을 많이 갖추었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폭넓은 환영을 받고 수요량도 점점 늘어서 발전도 더욱 빨라지고 생산량과 질도 계속 향상되었다. 서주(西周) 시기가 되어서는 제작기술이 더욱 진보하여 정제된 흙을 사용하여 유층(釉層)도 비교적 고르게 되었다. 기형은 점차 늘어나 주요 기물로는 주발·사발·제기·쟁반· 조미료 그릇·함·술독·항아리·두레박 등이 있었다. 상주청자(商周靑磁)가 출토된 지역으로 보면 청자의 사용은 널리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2) 초기 청자(靑磁)
 전국(戰國) 이후에 청자의 발전은 새로운 시기로 접어들어 초기 청자의 단계가 되었다. 이 시기 청자의 특징은 단단하고 기형이 크며 형태가 청동기에서 연유된 것이 많아 수선조문(竪線條紋)의 쌍이관(雙耳#38005;), 제량화(提梁#30409;)·삼족개정(三足蓋鼎)·이(#24413; : 제기의 일종)·편종(偏鐘 : 악기의 일종) 등이 있었다. 표면장식에는 담황유(淡黃釉)나 담록유(淡綠釉)가 사용되었다. 남방이나 북방의 전국시대 묘에서 많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전국시대에 도자기가 그 이전보다 많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서한((西漢) 초기에는 청자가 이미 세트로 많이 생산되어 항아리(壺)· 병(甁)· 물주전자(罐)·정(鼎 : 발이 셋, 귀가 둘 달린 쇠솥형태의 그릇)·합(盒)·종(鍾)·순우(錞于) 등이 있었다. 원시청자와 비교해 보면 질이 아주 높아져 중국의 청자발전이 새로운 역사적 단계에 진입했음을 알려준다.
 서한 후기에 청자 출토는 더욱 보편화되어 남방지역에서는 특히 한 번에 20~30건씩 출토되었다. 이 자기들은 재질이 가늘고 고르게 되어 있고, 유층(釉層)이 비교적 두텁고 광택이 났다. 유약의 색도 다양해져셔 청록색 외에 황록색(黃綠色)·담회색(淡灰色)·청갈색(靑褐色) 등이 있었다.
 동한(東漢) 시기에 자기의 재질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지금의 광동·복건·호남·호북 등지에서 출토된 청자는 태질이 비교적 거칠고 재료 속에 가는 모래(細砂)가 섞여 있었으며, 유약도 염기성 물질을 많이 함유해서 유층이 쉽게 벗겨졌는데 이는 청자의 생산이 여전히 성숙되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장강 하류의 절강·안휘 지역의 동한 말기의 무덤에서 출토된 청자는 질이 좋고 유약의 색도 삼국·양진(兩晋)시기의 청자에 아주 접근하여 거의 구별되지 않을 정도였다.
 은 한 번에 동한(東漢) 시기에 청자생산의 규모는 더욱 커지게 되어 큰 곳은 백여 점의 기물을 한꺼번에 구울 수 있었다. 따라서 생산량도 많았으며 판매지역도 비교적 넓게 분포했었다. 동한시기에 비교적 성숙된 자요지(磁窯址)는 절강성 동북의 영파(寧波)에서 남부의 영가(永嘉) 지역까지 상당히 넓었고 규모도 컸다. 흑유자기(黑釉磁器)의 출현은 새로운 혁신이었다. 유색은 비록 후대 것보다 떨어졌으나 하나의 분기점이 되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흑유자기는 그 과정이 복잡하지 않아 대량생산이 가능하여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였다. 당송(唐宋)시기에는 독특한 품격을 지닌 하나의 자기의 계통을 이루어 전국으로 넓게 확산되어 지역마다 특색을 지니고 민간의 생활과 호흡을 같이 하였다. 또한 해외로도 수출되어 동남아·한국·일본에서도 명성을 얻었다.

참조:세계도자사1(History of world ceramics 1) 저자명:황종례, 유성웅 출판사:한국색체문화사 출판년도: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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